내 생각, 남의 생각
by ceramist
카테고리
최근 등록된 덧글
내 생각, 남의 생각
구텐베르크 이래로, 세상은 생각의 호수에서 생각의 바다로 바뀌었다.




생각은 누군가의 머리에서 나와, 누군가의 머리로 들어가 잠시 묵다가 다시 나간다.

먼, 과거에는 들어오는 생각 하나 하나가 (희)귀한 것이었을 것이다.

귀한 손님이다보니, 머무는 시간이 길었고, 그러다 보니 나갈 때는 언제나 주인의 대접으로 조금씩 변화된 모습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인간의 기억력의 불완전성 때문에, 들어올 때 모습과 나갈 때의 모습이 완전히 같은 경우는 오히려 드물었을 것이다.




대중 매체의 발달로 사정이 달라졌다.

생각들은 하루에도 몇톤씩 쏟아져 머리속에 퍼부어지게 되어, 더이상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들어오는 생각들의 가치는 하나 하나 깊게 검토되지 못하고 그 생각을 발설한 사람의 인상, 지위 등에 의해 좌우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럴싸하게 느껴지는 생각들은 행여라도 틀릴새라, 들어온 그대로 내보내기에-이렇게 함으로써 "유"식을 자랑하기에- 급급하게 되었다.




상업주의는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이제 사람들은 머리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들이 들어가고, 재빨리 나간다.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니, 나갈 때에는 자기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은연중에 착각하게 되어 버렸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캐치프레이즈에 불과한 주장을 - 예컨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던가, "멕아더는 살인마다" - 를 외치는 자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더욱이 21세기의 어느 하루, 거의 모든 인간의 뇌의 일부가 실리콘 기계덩어리-망각의 은혜를 모르는-로 대체되어 버렸다.

이제 인터넷 상의 글쓰기는 Ctrl-C와 Ctrl-V가 상당부분 대체하게 되었다.

쏟아져 나오는 글들을 "중복 제거"의 기준으로 정돈하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글들이 남을까?



내가 이 블로그를 쓰며 다짐하는 것은, 내 머리속에 있는 것들의 출처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내" 생각을 쓰되, 불가피하게 남의 생각을 인용할 때는 확실하게 인용하여 누구라도 참고할 수 있고 나의 생각의 뿌리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밥을 먹어야 살수 있듯이, 남의 생각을 듣지 않고는 자신의 생각도 할수 없다. 따라서 남의 생각을 듣는 것 자체는 꼭 필요한 행위이다.

그러나, 밥이 들어가서 밥만 나온다면 그것은 이미 생물이 아니고 "보온밥통"에 불과하듯이,

들어간 생각이 그대로 나오는 머리라면 이미 사람의 머리는 아닐 것이다.


외부 링크들